[미스터리 추리 비주얼노벨] 회소의존 (The Chrono Jotter)
정말 오랜만에 할 말을 잃게 만드는 대단한 '비주얼 노벨' 작품을 만났다.'적당히 재밌네.' 수준이 아니고 마지막에 가서는 숨이 턱 막히는 느낌이 들 정도로 강렬한 느낌의 작품이었다.시나리오 라이터분의 뛰어난 상상력과 독창성이 돋보이는 수작이었다.하지만 이 대단한 작품에 대해서 소개하기에 앞서, 먼저 짚고 넘어가고 싶은 부분이 있다.그것은 이 작품의 제목이 도대체 왜 '회소의존'인가에 대한 부분이다.중국어를 모르기에 읽는 법까지는 모르겠지만, '회고' 또는 '회상'이라는 의미의 단어와 '의존'의라는 의미를 가진 두 단어가 합쳐졌는데 왜 뜬금없이 '회소의존'인가?원제대로라면 '회고 의존' 내지는 '회상 의존'이 되어야 하고, 영문명 대로라면 '회고 노트'나 '회상 수첩' 등의 의미로 번역되었어야 하는 제품인데, '회소의존'이라니 제목부터 뜬금없다.그렇잖아도 비주얼 노벨은 서브컬처류로 분류되기 때문에 게이머들 중에서도 노벨 장르를 좋아하는 유저들만 찾아 플레이하는 작품인데, 제목부터 이렇게 기억에 잘 남지 않을 모호한 의미의 뜻 모를 제목을 달아 놓았으니...스토브에서 독점 한글화 해 주신 부분은 너무나 감사한 일이지만, 게임을 시작하는 순간부터 게임 플레이를 완전히 마친 지금까지도 이 작품이 왜 '회소의존'인지에 대해서 전혀 이해가 가지 않는다.아무튼 제목에서부터 번역의 아쉬움이 드러나는 작품이긴 하지만, 스토리 하나만큼은 정말 대단한 작품이었다.단언컨대 이 작품은 절대 애매한 작품이 아니었다.재미가 있는 것도 없는 것도 아닌 애매한 기준에서의 적당한 재미와 적당한 흥미를 주는 그럭저럭할 만한 그런 작품이 아니라, 상당히 신기한 소재와 전개의 작품이었고 스토리가 마무리 지어지는 엔딩부는 가히 충격적이었다.시나리오 라이터 분의 상상력이 기발하다다고 해야 할지, 대단하다고 해야 할지, 어느 의미로든 내게 좋은 쪽으로 충격을 준 작품이다.단, 이 작품은 'LGBTQ+' 계열의 작품이다.위 스크린샷 하나만 보고 '당연히 남자 캐릭터'가 주인공이겠거니 하고 구입했는데 등장인물들이 모두 여자인데다가 (남성 캐릭터 단 한 명도 등장하지 않음), 여성 캐릭터들간의 동성애 모습도 그려지고 있기 때문에 이쪽 장르를 선호하지 않으시는 분들께는 추천하지 않는다.LGBTQ+ 작품은 가급적 잘 플레이하지 않는 작품인데 스팀 태그를 확인하지 않고 작품 시놉시스만 보고 구입했다가, 플레이를 시작하고서야 깨달았다.아, 이거 백합물이구나... 하고.BL물이든 GL물이든 내 수비 범위 내에 있는 소재의 작품은 아니지만, 비선호 소재의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의 스토리가 가히 압권이었기에 GL물에 대해 극도의 불호를 가지고 계신 분이 아니시라면 추천해 드리고 싶은 작품이다.앞서 소개한 것처럼 이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 여성 캐릭터들뿐이며, 주인공인 '이부키 란'은 실종된 여자 친구를 찾아서 4년째 여자 친구를 찾아다니고 있는 중이다.그러던 중 이부키 란은 한 낡은 교사(校舍)의 바닥에서 눈을 뜨게 된다.그가 왜 어째서 오래된 학교의 복도 바닥 아래 지하 공간에 갇히게 되었는지에 대한 기억은 없다.그렇다, 이 작품은 시작부터 이해할 수 없는 '출발 지점'에서부터 시작되는 이야기이다.낯선 공간에서 눈을 뜬 이부키 란은 극도의 불안 증세를 보이며 자신의 곁에 있는 공책을 뜯어 먹기 시작한다.그리고 그제서야 겨우 천천히 심리적 안정을 되찾게 되는 이부키 란.하지만 이부키가 왜 노트의 페이지들을 뜯어 먹는지에 대한 설명 없이 작품은 플레이어를 작품 속 세계 속으로 던져 넣는다.이후 이부키 란은 이 학교에 재학 중인 7명의 학생들 중 6명을 만나게 된다.하지만 이내 이부키 란은 이 학교도 이곳의 학생들도 뭔가 이상한 상태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이 학교에 재학 중인 학생은 총 7명이 전부인데, 놀랍게도 이 학교에는 교사도, 교직원도 존재하지 않아 그들 7명의 학생들끼리 모여 서로가 원하는 과목을 하나씩 맡아서 서로가 서로에게 수업을 해 주고 있다고 했다.게다가 학교에서 마을로 이어지는 유일한 길목인 터널이 무너져, 7명의 학생들 모두 벌써 1년째 학교 내 기숙사에서만 생활하며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는 중이라 하였다.이부키 란은 이들이 이 고립된 학교 내에서 어떻게 식량을 조달 받을 수 있었던 것인지에 대해서 의문을 가지지만, 이곳에 재학 중인 학생들 중 누구도 그 부분을 문제 삼지 않았다.마치 당연하다는 듯이 그들은 언제나 신선한 식재료가 가득하였기 때문에 '식사'와 관련된 부분에 대해서는 걱정을 해 본 적이 없다는 태평한 태도만을 보일 뿐이었다.뭔가... 혹은 누군가가 그들의 '인지 능력'을 제어하고 있는 것일까?하지만 이에 대한 해답은 아무것도 얻지 못 한 채 이부키 란은 그녀의 일생을 통틀어서 가장 충격적이라 할 수 있는 장면을 곧 목격하게 된다.그것은 바로...그녀가 4년 동안 애타게 찾아헤매었던 이부키 란의 연인인 '사쿠라 안'의 참혹한 주검이었다.그러나 이 장면에 충격을 받은 것은 이부키 란뿐인 듯했다.이부키 란을 제외한 나머지 6명의 학생들은 너무나 태연한 모습으로 거의 실성 직전의 이부키 란을 진정시키려 애쓰며 말한다.이 무슨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냐 할 수 있겠지만, 그들 6명 중 누구도 이부키 란을 상대로 터무니없는 농을 하는 것 같진 않았다.도저히 믿을 수 없는 허무맹랑한 소리였지만 이부키 란은 지푸라기도 잡는 심정으로 연인인 사쿠라 안의 시신을 살펴보면서, 그녀를 죽음에 이르게 만든 방법과 범인을 추리해 내기 시작한다.그 결과 정말로 다른 6명의 학생들의 주장처럼 사쿠라 안은 거짓말처럼 이부키 란의 눈앞에서 부활하게 되고, 마침내 사랑하는 연인을 다시 만난 이부키 란은 폭포처럼 눈물을 쏟아내며 사쿠라 안을 끌어안고 오열한다.하지만 그런 이부키 란을 바라보며 다시 살아난 사쿠라 안은 건조한 목소리로 묻는다.자신을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사쿠라 안'에게 이부키 란은 이루 말할 수 없는 큰 충격을 받지만, 어떻게 해서든 잃어버린 사쿠라 란의 기억을 되살려낸 뒤 무슨 수를 써서든 이 학교를 반드시 떠나고 말겠다고 다짐하는 이부키 란.이후 이부키 란은 '사쿠라 안'의 기억을 되돌릴 때까지만이라고 다짐하며, 이 이상한 학교에 머물며 사쿠라 안을 포함한 7명의 학생들과 함께하는 생활을 시작한다.그렇게 그들 중 하나가 된 이부키 란은 이 학교 내에는 그 어떤 논리와 이론을 가져와도 설명할 수 없는 신비한 힘이 이 작용하고 있어서, '사쿠라 안'이 그랬던 것처럼 이 학교에서 누군가가 죽임을 당하게 되더라도 살아 있는 이들 중 누군가가 범행 수법 및 범인을 맞추게 되면, 피해자는 자그마한 상처 하나 없이 완벽하게 죽음 이전의 상태로 부활하게 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1년째 감금 아닌 감금 생활을 하고 있는 이들 7명의 학생들은 이 신비한 힘의 능력을 적극 활용하여, 지금까지 매번 카드 뽑기를 통해서 '범인'과 '피해자'를 선정한 뒤, 서로가 서로를 죽이고 다시 서로가 서로를 부활시키는 '수업'이라는 이름의 놀이를 해 왔던 것이다.처음에는 누군가를 죽이고 그 주검을 본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심도 있었지만 어느 사이엔가 일상이 되어 버려, 그들은 이 '살인 행위'에 아무런 죄책감도 느끼지 않게 된 듯하였다.그도 그럴 것이 범인과 범행 수법만 맞춘다면 피해자가 완벽하게 다시 살아나게 되고, 그들 중 그 누구도 이 행위를 싫어하거나 거부하지 않기에, 죄책감'을 느껴야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이부키 란에게 있어서는 오로지 기억을 잃어버린 연인인 '사쿠라 안'만이 중요하기에, 이 학교 내에 나머지 학생들이 서로가 서로를 죽이든 살리든 그런 것 따윈 이부키 란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였지만...사쿠라 안의 기억을 되살리기 위해 이들과 함께하는 매일을 반복해 나가던 중 이부키 란은 사쿠라 안뿐만 아니라, 자신의 기억에도 지워진 부분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그리고 자신의 지워진 기억들 속에 사쿠라 안을 제외한 이 학교의 나머지 6명의 학생들에게도 자신과의 접점이 있었다는 사실을 하나둘씩 기억해 내기 시작하는 이부키 란.되살아나는 기억들은 이부키 란을 점점 더 혼란스럽게 만들었고, 그러는 와중에도 '살인 게임'은 계속해서 반복된다.여전히 사쿠라 안은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는 상황 속에서 이부키 란은 마침내 자신이 잊고 있었던, 하지만 반드시 기억해 내야만 했었던 가장 크고 무거운 그리고 충격적인 진실을 깨닫게 되고...이 작품의 스토리는 멈출 수 없는 폭주 기관차처럼 상상의 영역 밖을 내달리면서, 생각지도 못 한 반전과 충격적인 진실 속으로 질주하기 시작한다.'회소의존'은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사건 현장을 조사하고, 생존자이자 동시에 용의자이기도 한 학교 내 나머지 학생들의 알리바이를 조사하는 식으로 수사가 진행된다. 또한 약간의 '턴제 개념'이 존재해서 특정 시간대에 방문 가능한 장소가 1~3곳으로 지정되어 있어서, 방문 가능한 장소들 중 우선적으로 방문할 장소들을 정해 먼저 조사를 진행할 수 있다.여기까지는 꽤 평이한 수사 비주얼 노벨이라 할 수 있다.하지만 이 작품에는 꽤 독특한 시스템이 추가되어 있는데, 이 작품의 제목인 '回溯依存', 'The Chrono Jotter'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작품에서 사건의 진상을 밝히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조사 방법은 바로 '회상 (회고)'이다.이부키 란에겐 이 학교에 올 때부터 계속 소지하고 있던 물건이 하나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노트다.정신적으로 상당히 불안정한 캐릭터인 이부키 란은 심리적 안정이 필요할 때마다 이 노트의 페이지를 뜯어 먹기도 하고 (이 이유는 작품 후반부에 밝혀진다.), 수사가 필요한 시점에 이 노트에 자신의 피를 먹여 시간을 되돌리기도 한다.완전히 같은 원리라고는 할 수 없지만 이 노트는 마치 '해리포터 시리즈'에서 '헤르미온느'가 가지고 있었던 '타임 터너'의 기능을 하며, 이부키 란은 이 노트의 힘을 이용하여 과거의 시점으로 돌아가서 자신이 선택하지 않았던 다른 선택을 통해서, 사건의 진상과 관련된 더 많은 단서와 증언들을 수집할 수 있다.이 작품이 '회상 의존', '회고 노트'라는 제목인 이유도 이 때문이다.결과적으로는 선형적으로 진행되는 작품이지만, 이 회상 노트를 통해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다른 선택지를 골라본다든가 하는 재미가 있어서, 단순히 읽기만 하는 비주얼 노벨류보다는 좀 더 높은 몰입감을 제공한다.게임 초반부터 '일식누에'라든가, '토인 택배회사'라든가, '소혈씨'라든가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세계관과 관련된 용어들이 튀어나오기 때문에, 게임을 플레이하는 초중반에는 '이 세계관을 이해할 수 있는데 도움이 될만한 동일한 세계관을 공유하는 전작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그렇기에 작품 플레이 중 '이해할 수 없는 용어'들에 대한 설명이 노트에 추가가 되었다는 알림이 뜨면, 바로바로 노트를 열어서 해당 용어들에 대한 설명을 읽어 보는 것이 좋다.물론 이 용어들을 읽는다고 하더라도 '그래서 이게 본편 스토리랑 무슨 연관이 있는 건데?'라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초중반의 마치 수수께끼와도 같은 세계관 설정은 작품의 후반부에서야 밝혀지는 스토리와 '용어' 설명을 통해서 대략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되니, 초중반 스토리에 의문이 가득 들더라도 일단 진득하게 본편 스토리에만 집중하면서 플레이해 보시기를 권한다.작년 8월에 출시된 이 작품은 스팀에서 '압도적으로 긍정적' 평가를 받고 있지만 지원 언어가 '중국어' 뿐이라서, 작품을 플레이할 수 있는 유저들이 상당히 제한적인 작품이었다. 그런 이 작품을 감사하게도 스토브에서 독점으로 한글화를 진행해 주셨고, 그 덕분에 언어의 장벽 없이 한글로 플레이를 즐길 수 있게 되었다.문제는 한글화 퀄리티다.다소 급하게 번역이 진행된 탓인지 검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던 부분들이 상당히 보인다.오자도 많고, 분명히 한글로 번역이 되어 있음에도 마치 번역기 문체를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한 전혀 매끄럽지 못한 표현들이 적지 않다.일단 한글화가 되어 있기 때문에 게임을 진행하는 데 있어서는 무리가 없지만, 나처럼 행간의 의미까지 신경 써서 읽는 이에게 있어서는 이 작품 고유의 표현들을 전혀 느낄 수 없어서 상당히 거칠게 느껴지는 번역들이었다.이 부분과 관련하여 스토브에서도 문제 상황을 인지하고 현재 추가 검수를 진행하여 한글화 관련하여 재 업데이트를 진행할 예정이라고 하니, 좀 더 매끄러운 문체로 플레이를 즐기고 싶으신 분들은 추후 업데이트 이후에 플레이를 진행하시기를 권한다.📌 매끄럽지 못한 한글화 번역과 관련된 부분은 2022년 7월 8일 자로 개선 & 수정 완료되었다. 한글화 번역 퀄리티 문제도 해결된 만큼, 비주얼 노벨 장르를 좋아하시는 분들께서는 반드시 꼭 플레이 해 보시길 권하고픈, 스토리텔링이 뛰어난 작품임을 강조해서 말씀드리고 싶다. 자의로는 도저히 빠져나갈 수 없는 폐쇄적 공간이 '학교'라는 점과 그 학교 내에서 참혹한 살인이 일어난다는 점에서 설핏 '콥스 파티'가 떠오르기도 하지만, '회소의존'의 분위기는 그보다는 훨씬 가볍다.범행 수법과 범인을 맞추면 피해자가 온전한 모습으로 부활하게 된다는 점이 기묘하긴 하지만, 초중반부는 타 사건 수사물과 다를 바 없이 범인을 찾고 범행 방법에 대해 고민하는 평이로운 스토리의 작품이었고, 엔딩부로 접어든 이후부터는 충격과 놀라움 그 자체였다.대단한 상상력이 돋보이는 세계관의 작품이었다.하지만 그것보다 더 대단한 것은...이 작품의 엔딩부에서 밝혀지는 엄청난 '반전'이었다.나는 이 작품에 대한 스포일러를 밝히고 싶지 않다.그저 이 작품의 엔딩부에 대한 내 느낌을 한 줄로 표현하자면, '가슴에 박히는... 심장에 아로새겨지는 사랑' 이었다.이 글 초반부에 밝힌 것처럼, 'LGBTQ+' 장르는 선호하지 않는다.LGBTQ+를 혐오한다거나 싫어하는 것은 아니지만, 나는 이성애자이기에 굳이 동성애를 다룬 작품을 찾아서 플레이하지는 않는다.그런데...그런 내가 이 작품을 플레이하고 느낀 점은 단 하나였다.'이게 사랑이 아니면... 뭐가 사랑이지?'동성이라든가, 이성이라든가...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었다.이것은 '희생'에 관한 이야기이고, '사랑'에 관한 이야기였다.자신의 모든 것을 내던질 수 있는 사랑...'황태자 루돌프' 또는 'The Last Kiss'라는 제목의 뮤지컬이 있다.그 뮤지컬의 OST 중 '사랑이야' 라는 노래가 있는데, 정말 좋아하는 노래다.이 노래의 가사 중 일부를...이 작품 '회소의존'에 대한 나의 감상평으로 정리하고 싶다.
LadyCALLA 2022.05.24 00:17(UTC+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