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새밭 사잇길로] 아트와 BGM은 좋았고 스토리는 무난한 작품
작품명 : 억새밭 사잇길로개발사 : 아트 오브 텐스특징 : 멀티 엔딩의 2D 풀 보이스 로맨스 비주얼 노벨플랫폼 : PC (스토브 인디)언어 : 한글 지원가격 : 19,500원억새밭 사잇길로는 가을이 저물어 가는 11월의 억새밭을 배경으로 스토리가 진행되는 풀 보이스 2D 로맨스 비주얼 노벨이다.미연시 (미소녀 연애 시뮬레이션) 이라고 하기엔, 히로인이 한 명인데다 로맨스가 중심이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미연시의 꽁냥꽁냥함보다는 서사에 중심을 두고 있기 때문에 미연시라기보다는 로맨스 요소가 있는 비주얼 노벨이라 생각한다. 게임이 처음부터 끝까지 위 스크린샷과 같이,텍스트가 화면 전체에 출력되는 방식이라 '키네틱 노벨'이라 분류하기도 하지만, 키네틱 노벨은 분기 없이 스토리의 처음과 끝이 하나로 정해져 있다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기에, 노말 엔딩과 트루 엔딩 그리고 3개의 배드 엔딩으로 구성되어 있는 '억새밭 사잇길로'는 '키네틱 노벨'의 특징을 가진 비주얼 노벨이라 생각한다.'억새밭 사잇길로'는 작품의 매력과 아쉬운 점이 분명한 작품이었는데, 우선 작품의 시놉시스부터 간단히 소개한 뒤 이 작품의 매력과 아쉬운 점 또한 정리해 드리고자 한다.시놉시스그것은 꿈이었을까, 환상이었을까?그날의 가을과 억새밭이 어우러져 만들어낸 그 풍경이 너무 멋들어져 현실 같은 꿈을 꾼 것인지도 모르고,그저 어린 마음에 만들어낸 상상의 상물이었을지도 모른다.그로부터 10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는 스스로조차 진실을 알 수 없게 되어 버렸지만,억새밭 사잇길로의 남자 주인공인 '유나호'는 고작 9살에 불과했던 그 어린 나이에 이 억새밭에서 '요정들'을 보았다.아니, 보았다고 생각한다.하지만 그것은 정말로 진실이었을까?알 수 없다.어쩌면 그 모든 것은 그저 다 자신의 착각에 지나지 않을 지도 모른다. 부친의 영향을 받아 어린 시절부터 카메라를 장난감 삼아 자라온 나호는 어느덧 19살의 고교 3학년생이 되었고, 수능이라는 무거운 과업 하나를 끝마치고서는 홀가분한 마음으로 카메라를 들고 억새밭을 찾았다.생각해 보면 어린 시절에는 이 억새밭을 놀이터 삼아 이곳에 자주 와서 놀곤 했었다.그러나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고 하지 않는가.몇 년간 다른 도시로 이사를 갔다 다시 돌아온 이후에는 학업 등으로 바빠져서 유년 시절의 추억 한 컷을 차지하고 있는 이 억새밭에 대한 감흥도 시들해졌다.그럼에도 10년 만에 다시 이곳을 들르게 된 이유는 예술제에 출품할 사진을 촬영하기 위해서다. 그렇게 그녀와 처음 만났다.억새밭 한가운데서 억새와 꼭 닮은 연한 노란빛의 머릿결을 가진,분명 젊어 보이긴 하는데 몇 살인지 가늠하기도 어려운, 마치 아득히도 머나먼 시간 저 너머 어딘가를 그리워하는 듯한 눈빛을 가진 그녀가 그곳에서,이제는 점점 차가워지기 시작하는 가을 끝 무렵의 바람을 맞으며, 바위 위에 살포시 기대어 앉아 있었다. 그녀의 그 처연해 보이는 모습에 한순간 시선을 뺏겼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카메라를 들어, 그녀의 모습을 렌즈 속에 담았다.그 찰나의 순간을 나는 영원토록 남겨두고 싶었다.왜였냐고 물어온다면 대답이 궁해진다.그러게, 왜였을까.그녀는 무척이나 아름다운 사람이었지만,그녀에겐 단순히 '예쁘다'는 말로는 다 표현하지 못할 '아련함'과 '쓸쓸함'이 있었다.그리고 그 모습은 이 가을의 억새밭과 완벽하게 어우러져, 마치... 그 자체가 완벽한 하나의 작품 같았다.하지만 이건 엄연히 도촬이다.본인에게 허락받지도 않은 사진을 마음대로 촬영한다니, 일반인은 물론이고 장차 포토그래퍼를 꿈꾸는 사람이 해서는 결코 안 될 일이다.나호는 아까운 마음을 애써 억누르며, 억새밭에서 만난 그녀의 사진을 카메라에서 지워 버린다.하지만 어떻게 해서든 그녀의 모습을 자신의 렌즈에 담고 싶었다.도촬이 아니라, 당당히 그녀의 허락을 받은 뒤에...그래서 용기를 내어 그녀에게 다가가 말했다.이것은 한 소년이 한순간의 충동과 함께 용기를 쥐어 짜내어 붙잡은 이 '찰나'의 인연을 계기로 시작되는 이야기.수능을 마친 다음 날인 11월 14일에 시작하여 11월 26일까지, 2주가 채 되지 않는 시간 동안 소년에게 일어난 이 모든 일들은 이후 소년의 인생 전체를 뒤흔드는 커다란 사건으로 이어지게 된다.억새밭에는 비밀들이 잠들어 있다.누군가의 절망, 누군가의 그리움, 누군가의 상처, 누군가의 후회, 누군가의 기다림...긴 시간 잠들어 있던 그 비밀들이 하나, 둘 다시 깨어나기 시작한다.운명의 톱니바퀴가 다시 한번 돌아가기 시작한 것이다...'억새밭 사잇길로'의 특징- 작화가 정말 매력적인 작품으로 총 57장으로 구성된 미려한 일러스트들이 눈을 즐겁게 만들어 준다.캐릭터들이 등장하는 일러스트는 말할 것도 없고 억새밭을 배경으로 하는 단순 배경 이미지들조차 한 장, 한 장 정성 들여 그려냈다는 것이 느껴져, 플레이 하는 동안 배경 이미지조차 손이 바쁘게 캡처할 만큼 작품 내 모든 일러스트들이 아름답다. - 풀 보이스 더빙 작품으로 '억새밭 사잇길로'에는 박기령 성우님, 엄강식 성우님, 손효경 성우님, 김대진 성우님, 김지형 성우님, 안세현 성우님께서 목소리 연기에 참여해 주셨다.- 플레이 타임은 개인별 글 읽는 속도에 따라 다를 수 있으나, 정독하는 스타일인 내 경우엔 트루 엔딩까지 진행하는데 대략 15시간 안팎의 시간이 걸렸다.- '억새밭 사잇길로'는 '한국형 로맨스 판타지' 임을 표방하는 작품으로, 한국의 설화적 요소들을 차용하여 스토리에 긴장과 흥미를 더한다.특히 미로와 시헌 그리고 세미의 과거 서사에 한국의 비극적 과거사를 접목시켜서, 당시의 개인이 느끼고 경험해야 했을 아픔과 상실을 표현한 부분에 대해서는 정말 높게 평가하고 싶은 부분이다. - OST에 꽤 공을 들인 작품으로 총 26곡의 OST가 작품 내 다양한 분위기를 적절하게 잘 드러낸다.- 작품의 스토리에는 총 3번의 변곡점이 있으며, 이 3번의 큰 사건들을 통해서 작품 초반에 흩뿌려져 있던 복선들에 대한 설명이 모두 이뤄진다.- 트루 엔딩을 보고 난 뒤에는 메인 화면에 '엑스트라 모드'가 생성된다.'억새밭 사잇길로'의 아쉬운 점- 작품 내 오탈자가 굉장히 많은 편이다.- 총 15시간 정도 되는 플레이 타임 중, '슬슬 이제부터 재밌어 지겠는데?'라는 느낌이 들기까지 최소 5시간이 소요된다. - 바로 위의 설명과 이어지는 부분인데, 초반부 전개가 길다면 길고 지지부진하다면 지지부진하다.주인공과 주변 인물들간의 티키타카에 초점을 맞춰서 초반부에는 '개그'나 '웃음 요소'에 중점을 두려 한 듯 하나, 이 또한 5시간 가까이 이어지니 스토리의 긴장감이 처지는 느낌이 있었다.- 트루 엔딩에 대한 호불호가 있을 수 있다.게임이고 판타지 설정이 들어가 있다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트루 엔딩을 행복하게 끝맺기 위해 억지 요소가 더해진 부분이 없잖다고 생각한다.감상평‼️ 엔딩과 관련된 내용은 아니지만, 작품 내 스토리와 관련된 매우 중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스포일러를 원하지 않으시는 분들께서는 지금 '뒤로 가기'를 해 주세요 !!'억새밭 사잇길로'를 플레이하는 동안 몇몇 영화 작품들이 떠올랐다. 우선 '억새밭 사잇길로'의 캐릭터 설정은 유지태 님과 윤진서 님을 주연을 맡았던 2010년작 영화, '비밀애'를 떠올리게 만들었다.쌍둥이 형제가 한 여자를 좋아한다는 설정이 '비밀애'와 무척 닮아 있기 때문이다.'비밀애'가 파국으로 치닫는 격정 멜로라면, '억새밭 사잇길로'는 순한 맛의 비밀애 같은 느낌이었다. 또한 '억새밭 사잇길로'에서는 '10년'이라는 시간은 '기다림'과 엮여 꽤 큰 의미를 가지고 있다.특히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을 온 정성과 마음을 다하여 10년간 기다려 왔지만, 운명의 장난과도 같은 비극적인 엇갈림으로 인해 서로가 역할을 바꾸어 또다시 길고 긴 기다림을 시작해야 한다는 설정은 2002년작 영화 'Three' 중 여명 분과 증지위 분이 주연을 했던 'Going Home'의 스토리를 떠올리게 만들었다. 엔딩씬의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 바람이 불지 않는다. 그래도 살아야겠다.'는 나 역시도 무척이나 좋아하는 남진우 시인의 '로트레아몽 백작의 방황과 좌절에 관한 일곱 개의 노트 혹은 절망 연습'의 한 구절이다.'바람'은 본 작품에서 억새밭과 함께 지속적으로 등장하는 요소 중 하나이다. 때로는 누군가를 상처 입히기도 하고, 때로는 누군가를 지켜주기도 하는 '바람'에 대한 설정은 바로 이 '로트레아몽 백작의 방황과 좌절에 관한 일곱 개의 노트 혹은 절망 연습'의 한 구절을 언급하기 위해 처음부터 고려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그리고 또 하나 짚고 넘어가고 싶은 것이 있는데 '억새밭 사잇길로'는 '순애' 장르에 충실한 서사였지만, 나로서는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있었다.아이의 모습인 체 하고 있다 하여 정신 연령마저 그 나이대의 아이들과 동일해지는 것은 아니며,실제로 작품 속에서도 '아이의 몸을 하고 있을 뿐, 연륜이 묻어나는 사고를 하는 존재'가 이제 겨우 9살 된 아이에게 이성적 호감을 느꼈다는 설정에서 어리둥절하지 않을 수 없었다.성인 또한 충분히 어린아이의 순진무구함을 보며 위로받을 수 있고 마음의 평안 내지는 위안을 얻을 수 있지만, 소년이라고 하기에도 너무나 어리기만 한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에게, 인간을 완전히 뛰어 넘는 초월적 존재가 '모성'도 아닌 '이성애'를 느꼈다는 점은 절로 고개를 갸웃하게 만들었다. 조금 비껴나가는 이야기이긴 하나, 세세한 설정이나 스토리 전개 측면은 완전히 다르지만 '억새밭 사잇길로'와 비슷한 설정의 작품 중에 김영희 만화가님의 '마스카'라는 작품이 있다.'마스카'에는 우연히 갓난 아이를 키우게 된 한 마법사가 그 아이의 양아버지이자 스승으로서 아이를 키워내다가, 어느덧 아름다운 여성으로 자라난 자신의 제자에게 사랑에 빠지게 된다는 설정이 나온다.이 또한 평범한 설정은 아니지만, 다 자란 이성에게 사랑의 감정을 느끼게 되는 것과 9살 아이에게 이성적 호감을 가지게 된다는 부분에서 극명한 차이를 보인다. 차라리 처음의 만남에서는 '모성'이었으나 시간이 흐른 후 다시 만난 상황에서 '이성적 감정'을 느끼게 되었다든지, 혹은 아예 주인공의 연령대를 올려서 19살에 처음 만났고, 그로부터 10년이 흐른 뒤인 29살에 다시 만나게 되었다는 설정으로 스토리를 진행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로맨스 중심의 서사를 풀어나가기 위해 '모성'이 들어서야 할 자리에 '이성에 대한 사랑과 그리움'이라는 감정을 대신 채워 넣은 것으로 예상되는데, 로맨스 작품임을 감안할 때 이해는 할 수 있지만 그리 공감이 되진 않는다.작품에 등장하는 9살 아이들 또한 아이다운 천진난만함을 보이면서도 한편으로는 인생 2회차를 사는 듯한 감정 묘사나 사고를 하는 모습들도 있었기에, 이러한 부분들을 모두 고려해 볼 때 주인공의 초반 연령대를 너무 어리게 설정한 점이 이 작품의 가장 아쉬운 점으로 느껴졌다. 그럼에도 '일러스트 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작품 내 아트 한 장, 한 장이 다 예뻤고, 풀 더빙이나 BGM 등에 상당히 공을 들였다는 점에서 평소 '순애' 장르의 남성향 비주얼 노벨을 좋아하시는 분들이라면, 한 번쯤 플레이 해 보셔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LadyCALLA 2023.09.09 00:28(UTC+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