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우리 학교는] 그날 그곳에는 삶과 죽음 그리고 아이들이 있었다.
학교라는 폐쇄적인 공간과 십 대인 어린 학생들이 생과 사의 기로에서 사투를 벌인다는 설정으로 '한국형 좀비물'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던 '지금 우리 학교는'은 2009년부터 2011년까지 연재되었던 원작 웹툰의 흥행에 힘입어, 지난 2022년 넷플릭스 드라마로도 한차례 흥행을 일으켰고, 23년 5월 30일 게임으로 출시돼 세 번째 변신을 시도했다.2D 공포 비주얼 노벨로 출시된 '지금 우리 학교는'은 국내 유명 성우님들 24분께서 더빙에 참여하셔서, 시각적 재미뿐만 아니라 청각적 재미에도 즐거움을 더한 작품이다.100여 장에 달하는 고퀄리티 일러스트와 12시간 이상의 플레이 타임을 보장하는 '지금 우리 학교는'의 플레이 후기를 남겨 본다.7월 6일,아직 여름이 절정에 달하기에는 조금 이른 그날, 7월 초의 효산시의 효산 고등학교 학생들은 여느 때와 다름없는 평범한 하루를 맞이했다.평범한 하루라는 건 그런 거다.아침잠을 위해서는 기꺼이 아침밥 정도는 포기할 수 있는 10분 아니 5분의 단잠이 더 소중한 아침.방학은 아직 멀었고,기말은 그보다 조금 더 빨리 찾아올 테지만, 적어도 지금은 늘 그러했듯 아침잠을 몰아내며, 교복을 챙겨 입고 학교로 등교하는 나날.아침에 눈 뜨는 건 그렇게 피곤했는데,막상 학교에 도착해서 친구들을 만나면 전날 본 동영상이나 가십 얘기를 하느라, 어느새 피곤함 따위는 모조리 잊어버리게 되는 그런 너무나 평범하고 평범한 하루.그러니까 그런 평범한 하루도 다른 여느 날과 다름없이 평범하게 지나가고 마무리되어야만 했다.그랬을 터였다. 누가 봐도 범상찮은 일을 당한 것이라 생각되는 한 여학생이 힘겹게 교실 문을 열고 들어서며, 간절하고 절실하게 도움을 요청하며 쓰러지기 전까지만 해도...효산 고등학교의 아니, 효산 시에 거주하는 그 누구도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었을 것이다.그날이 효산 시의 전과 후를 가르는 거대한 사건의 기점이 될 거라고는... 여학생의 입에서 나온 말은 실로 믿기지 않는 놀라운 이야기였다.과학 담당인 '이병찬' 선생님이 자신을 감금하여, 지난 이틀간 내내 결박되어 있다가 이병찬 선생님이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간신히 탈출했다는 것이다.이병찬 선생...그는 어느 학교에서나 한 명쯤은 있을 만한 따분하고 지루한 수업을 하는 평범한 교사였다.하나 괴이하다 할 만한 특징이 있다면,언젠가부터 그에게서 뭐라 말할 수 없는 지독한 악취가 풍겨나기 시작했다는 것인데, 그의 몸에서 나는 냄새와 관련하여 이런저런 소문이나 말들은 많았지만,그저 가까이하고 싶지 않은 재미없고 불편한 선생님, 딱 그 정도가 '이병찬'에 대한 효산고 학생들의 평가였다.그런데 그런 그가... 학생을 납치했다고?하지만 진실이 무엇이건 간에 우선은 현주를 안정시키고, 현주의 상태부터 살펴봐야 했다.2학년 5반 담임인 '박선화'는 급한 대로 현주를 보건실로 이동시킨 후, 구급차를 불렀다.현주의 상태는 눈에 띄게 나빠지고 있었다.이틀간의 감금으로 정신이 온전치 못 했기 때문일까? 현주는 자신을 부축해 온 두 명의 여학생 중 한 명의 팔을 물어 버린다. 너무나 갑작스러운 현주의 행동에 팔을 물린 이삭은 놀라고 당황했다.현주에게 물린 부위가 아프고 약간의 피도 배어 나오고 있었지만, 급한 대로 간단한 소독과 응급 처치를 마치고 이삭은 함께 현주를 부축해 왔던 온조와 함께 교실로 돌아갔다.잠시 후 현주는 학교에 도착한 구급차를 타고 학교를 떠났다.꽤 특이하고 이상한 썩 유쾌하지 않은 경험이긴 했지만,모든 일이... 이쯤에서 끝이 났다면, 이삭의 물림 사고는 어쩌면 그저 어느 날 일어난 웃지 못할 해프닝 정도로 이야기 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그러나 이 잠깐 동안에 일어난 일련의 사건들은 앞으로 닥쳐올 거대한 절망과 공포와 비명으로 가득할 무시무시할 미래의 서막에 지나지 않았다. 교실로 돌아온 이후, 현주에게 물린 이삭의 상태가 급속도로 나빠지기 시작했다.이내 이삭은 책상에 엎드린 채로 피를 분수처럼 내뿜기 시작한다. 한편, 과학실 한편에 현주를 감금했었던 이병찬 선생은 구급차와 함께 출동한 경찰에 의해서, 경찰서로 이송된다.그러나 경찰에게 잡혀가면서도 이병찬은 그 어떤 변명도 핑계도 대지 않고, 현주를 절대로 학교 밖으로 내보내선 안 된다는 말만을 거듭 강조했다.그러나 어린 여학생을 아무도 모르게 이틀이나 감금해 놓았던 이병찬의 외침에 귀를 기울여 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그렇게 이병찬이 학교를 떠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7월 6일의 효산고는 악몽과 절망으로 가득한 지옥보다 더욱 끔찍한 살육의 현장으로 변하게 된다. 아무도 모르게 효산고 내부에서 숨겨져 자라고 있던 어둠은 은밀하게 자라나, 한순간에 효산고를...그곳에 있던 학생들과 교직원들을 집어삼켰다.죽음의 공포가 순식간에 효산고를 휩쓸어 버렸다.비명, 절규, 피가 튀기고, 살점이 떨어져 나가고, 교육의 공간이었을 그곳은 눈 깜짝할 사이에 살육의 현장으로 바뀌어 버린 지 오래였다.지옥이 있다면,바로 이곳이다.아니, 이곳은...지옥보다 더한 지옥이다.그렇게 지옥의 가장 깊은 곳에 도달한 자들의 첫 번째 하루가 시작되었다. 풀 보이스 더빙 성우진 : 강시현, 김나율, 김영선, 김진홍, 김혜성, 류승곤, 문유정, 박민기, 박성영, 방시우, 서다혜, 성예원, 송하림, 신범식, 이경태, 이명화, 이보희, 이은조, 장미, 장예나, 정의진, 정의택, 최승훈 성우님총 10개의 챕터 & 12시간 이상의 플레이 타임 트루 엔딩을 제외한 최종 엔딩은 9장에서 끝이 나며, 트루 엔딩에 한해서만 10장으로의 진입이 가능하다.미려하게 그려낸 캐릭터들과 공포 비주얼 노벨 특유의 매력이 잘 살아 있는 100여 장의 고 퀄리티 일러스트20개의 배드 엔딩 & 트루 엔딩을 포함한 6개의 최종 엔딩 가보지 못 한 루트로의 빠른 이동을 도와주는 편리한 '스토리보드' 스토리보드를 이용하면 가보지 못했던 분기점과 선택하지 못했던 선택지들이 있는 지점으로 빠르게 이동할 수 있다. 단순히 스토리 진행 정도와 분기점을 보여 주는 것에 그치지 않고, 해당 지점으로 즉시 이동하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이다.3개의 사이드 스토리 3개의 사이드 스토리는 메인 스토리의 진행 정도에 따라서 순차적으로 개방된다.처음 1회에 한해서 엔딩 크레딧 전체를 감상하는 즐거움은 분명 있었지만, 엔딩 크레딧 스킵 기능 or 빨리 넘기기 기능이 없어서 동일한 연출의 엔딩 크레딧을 반복 재생해야 하는 점은 불편했다.작품 내 맞춤법 및 오자에 대한 검수가 꼼꼼하게 이뤄지지 않은 부분이 옥에 티였다. 플레이 중 발견한 몇몇 오자들에 대해서는 현재 개발사에 말씀을 드려 놓았다.설정에서 '읽지 않은 텍스트 스킵' 옵션을 'No'로 설정해 놓았음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선택지를 고른 후 '넘기기 (Z)' 기능을 작동시키면 읽어본 적 없는 텍스트들도 그대로 스킵 되면서 자동으로 넘어가는 현상이 있다.트루 엔딩의 경우, 챕터 9에서 챕터 10으로 이어지는 연결 부분은 '개연성' 측면에서 이해가 되지 않는다. 트루 엔딩 루트의 챕터 9 마지막 루트와 챕터 10을 아예 별개로 본다면, 각기 다른 엔딩으로 충분히 이해가 가능한 구성이나, 이 둘을 하나로 합쳐 놓아서 하나의 엔딩 안에 두 개의 엔딩이 존재하는 방식이 되어 버렸다. 이 부분과 관련하여서 개발사에서도 확인을 해 주시겠다는 답변을 받았다.성공한 원작의 IP를 가져와서 게임화하는 것은 '성공이 보장된 탄탄대로일 것'이라는 기대와는 달리, 실제로는 굉장한 모험심이 필요한 도전이다.완전히 새로운 작품을 내어 놓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게임으로 처음 해당 작품을 접하는 신규 유저들은 물론이고 이미 탄탄한 마니아층을 형성하고 있는 원작 팬들의 마음까지 사로잡아야만,비로소 원작의 성공에 기대어 빛을 보려는 어설픈 게임이 아니라, '제대로 잘 만들어진 게임'이란 평가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지금 우리 학교는' 역시 유명 웹툰을 기반으로 제작된 만큼 이와 같은 평가의 잣대를 피할 수 없다.이제 막 출시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벌써부터 원작과 차이가 없는 플롯에 대해서 아쉬움을 표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그래도 나는 이 작품이 재밌었다.원작 웹툰도 드라마도 모두 재밌게 보았었는데, 게임으로 만난 '지금 우리 학교는'도 재밌었다.하지만 내가 게임으로 만난 '지금 우리 학교는'이 익숙하면서도 새롭게 느껴졌던 이유는 원작 스토리의 큰 틀이나 흐름은 기억하고 있지만, 세세한 설정까지는 다 기억이 나지 않아서도 한몫한 듯하다.원작은 오래전 연재 당시에 보았었기에, 현재 내 기억 속 '지금 우리 학교는'은 넷플릭스에서 방영한 드라마의 이미지가 크다.그래서 드라마 '지금 우리 학교는'과는 같으면서도 살짝살짝 다른 설정이나 전개가 재밌었다.'선택지'가 스토리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라 해당 챕터에서만 영향력을 행사하기 때문에, 최종 엔딩의 경우에도 이전 선택을 어떻게 했든 간에 최종 챕터까지 왔다면,해당 챕터 내에서 어떻게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서 엔딩을 쉽게 나누어진다는 점은 분명 아쉬웠다.그럼에도 시각적으로만 구성되어 있던 원작이나 실사인 드라마와는 달리 만화의 특징 (2D 아트)과 드라마의 특징 (더빙, BGM, 각종 시각적/청각적 효과)이 결합된 게임으로 만나는 '지금 우리 학교는'은 오래된 '지우학' 팬인 내게는 또 하나의 즐거움이 되어 주었다. 특히 작품 중간중간...안타깝게 생을 마감해야 했던 학생들의 사고와 관련된 기억을 떠올리는 멘트들이 많아서, 그러한 부분들도 참 의미 깊게 다가왔다.시나리오 라이터 분께서 이러한 부분들을 염두에 두고 대사를 쓰신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분명 내게는 울림이 있었다.혹자는 게임 속에 메시지를 욱여넣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고는 하지만, 내게는 그 메시지들이 닿았다. '게임 지금 우리 학교는'을 플레이하면서,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인간의 이기심은 본성이라고 한다.그러니 생사기로에서 생존을 위해 타인보다 나를우선시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생존 본능일 것이다.하지만... 그렇지만...그렇다고 해도...모든 것이 무너져 가는 현실 앞에서 인간이... 같은 인간마저 믿을 수 없게 된다면,나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믿을 수 없는 세상에서, 과연 그런 세계에 '희망'이라는 게 존재하기는 할까?그곳에 아이들이 있었다.아무도 없는 그곳에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살고자 했고, 서로를 살리고자 했던 아이들이 있었다.그 아이들을 끝까지 버티게 해 주었던 것은 '희망'이었다.만약 그런 희망조차 없는 세계와 맞닥뜨리게 된다면,과연 인간은 무엇을 믿고, 기대하고, 바라며 생을 갈구할 수 있을까.못 믿을 게 인간이라고 한다.그렇지만... 가장 깊고 짙은 어둠 속에서도 사람인 우리를 여전히 살아 숨 쉬고, 버틸 수 있게 해 주는 것은 다른 그 누구도 아닌... '인간에 대한 믿음'이 아닐지...난 이 작품을 플레이하면서, 그렇게 생각했다.익숙한 스토리, 익숙한 캐릭터, 익숙한 엔딩이었지만...그럼에도 반가웠고, 익숙해서 정겨웠고, 몇 번이나 보아 잘 알고 있는 구성이었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난 감동 받았다.그러니까 이 작품은 내게 좋은 작품이 맞다.즐겁게, 재밌게, 의미 있게 잘 플레이했다.작중 캐릭터인 '박선화' 선생님의 대사로 이 포스팅을 마무리 짓고 싶다.
LadyCALLA 2023.06.02 00:40(UTC+9)